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진호 전투 (문단 편집) == 승패 여부 == 객관적으로 결과만 본다면 중공군이 승리한 전투다. 다만 [[피로스의 승리| 인명 피해가 워낙 막심해]] 포위 섬멸이라는 전략적 목표의 완전 달성에는 실패했다.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측에선 ‘중공군의 전략적 승리는 중공군은 미군의 포위 섬멸을 목표로 했으나, 이루지 못했다는 점에서 완전한 승리는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장진에서의 철수는 중부전선에 큰 돌파구가 뚫리는 결과를 낳았다. 이에 따라 북진하던 서부전선과 동부전선의 UN군은 전면적인 철수를 할 수밖에 없어 [[평양시]]를 도로 내주었고, [[원산시]]도 점령되었다. 원산이 중공군에 점령당해 퇴로가 끊겨 [[함경도]]에 고립되었던 동부전선의 미 10군단과 한국군 1군단은 [[흥남 철수작전]]으로 성공적으로 빠져나오기는 했지만, 결국 UN군은 37도선까지 후퇴하여 [[1.4 후퇴|다시 한 번 서울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또한 ‘크리스마스 전에 전쟁을 끝내겠다’는 UN군의 전략적 목표는 영구히 달성할 수 없게 되었다.[* 정확히는 맥아더의 크리스마스는 집에서 보내게 해주겠다는 발언이었다. 그러면 그 말을 한 순간부터 병력들이 미국으로 철수하기 시작해야 할 것인데 감히 맥아더에게 그런 문제까지 따지는 병사들이나 언론은 없었다.] 공산 진영은 [[인천상륙작전]] 이후 속절없이 밀리던 [[북한]] 지역을 대부분 되찾았다. 이런 전체적 결과를 보면 UN군의 패배가 자명한 것이다. 물론 수적 열세 상황에서 잘 싸웠고, 패전이 패주로 마무리되지 않게 성공적인 철수작전을 완수한 미군 장병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긴 어렵다. 미군의 전술적 승리[* 출처 The Mistaken History of the Korean War What We Got Wrong Then and Now p67.저자 Paul M. Edwards(그레이스 대학 한국전쟁 연구학회 총재), From the point of view of ground operations principle, Chosin Link-up operation discussion of the US 1st Marine Division 출처 [[대전대학교]] 군사연구원, 사이언스 타임[[https://www.sciencetimes.co.kr/news/%ED%9B%84%ED%87%B4%ED%95%98%EA%B3%A0%EB%8F%84-%EC%8A%B9%EB%A6%AC%ED%95%9C-%EC%9E%A5%EC%A7%84%ED%98%B8-%EC%A0%84%ED%88%AC/|#]] 단, UN군측 평가이니 감안할 것.]는 숫자상 병력 손실 면에서도 미군이 우세했지만 더 중요했던 것은 중공군 제9병단이 서부전선에 증원할 병력을 소진시켜서 빠르게 전선에서 이탈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중공군 제9병단은 장진호 전투에서의 피해가 너무 큰 결과 전선에서 이탈했다. 만약 제9병단이 별 피해 없이 장진군을 돌파했다면, 제13병단과 대치중이던 서부전선 미 8군의 퇴로를 차단했을 것이고 미 8군은 포위섬멸되거나 [[흥남 철수작전]]처럼 바다로 철수하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미 해병 1사단이 분전한 덕분에 미 8군은 서부전선에서 무사히 철수했다. 일선의 병사들이 잘 싸워 이긴 전투를, 맥아더의 오판이 패전으로 바꿔버렸다 볼 수도 있다. 미군은 미군대로 자기들이 졌다고 생각했지만, 미군과 싸운 중국군은 삭풍한설이 몰아치는 산속에서 보급도 없이 밥도 못 먹고 공습 당하느라 군대가 녹아내려 이쪽 역시 스스로 졌다 생각할 만한 상황이었기에 미10군단의 뻘짓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 미 해병대가 동부전선의 중공군 전체와 좁은 전선에서 싸울때 대체 알몬드와 맥아더는 뭐하길래 미10군단의 4개 사단을 후방에서 놀고만 있게 했는지는 의문. 중공군이 몽땅 장진호에 몰려 있을 때, 미육군은 대체 누굴 보고 놀라서 흥남까지 [[빤스런]]한 건지도 의문이다. 사실 미 해병대는 장진호에서 흥남으로 철수하면서 당연히 강력한 방어선을 구축하여 겨울을 보낸 후 반격을 할 것으로 생각하였다. 하지만 맥아더-알몬드의 결정은 전면적인 철수였다. 더 많은 병력, 더 많은 보급, 압도적인 화력과 공군, 해군을 보유했는데 불구하고 싸운다는 생각 자체를 포기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